요즘의 야구 팬 문화..?

(단지 예시일 뿐입니다)
오늘 같은 날 서울의 어느 술집에 LG팬 한명이 들어갑니다.
봉중근 8이닝 2실점 1자책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응집력이 안타까웠죠.
뜬금포로 리드당하고 바로 등판한 정대현에게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무릎 꿇었습니다.
안타깝죠. 한숨이 나옵니다. 아쉬운 마음 맥주 한 잔으로나마 달래 보려고 술집 문을 열었습니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면서 이것저것 떠올라요.
두세바퀴 구르면서도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뛰던 정성훈 얼굴도 떠오르고..
2사 1,2루에서 올 시즌 10타수 무안타째를 찍은 이병규 생각도 나구요.
생각할수록 답답한 가슴에 한잔 두잔 들이붓다 보니 어느새 꽤 마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술집 문이 열리고 빨간 색 SK저지를 입은 사람이 둘셋 들어옵니다.
안그래도 언짢은 기분에 모른 척 얼굴을 돌리는데 신나서 얘기하는 말들이 귓전을 스쳐요.
"역시 꼴쥐는 XXX" "쥐새끼들이 XXX"
술도 얼큰히 마셨겠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올라갑니다.



저는 LG TWINS의 팬입니다.
살다보면 거르게 되는 성당이나 교회처럼
늘 꾸준히 관심가져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순 없지만
93년 경부터 나름 살아온 시간의 반 이상을 LG 팬으로 지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좋은 것이죠. 예전에는 타팀팬과는 물론 같은 팀 팬끼리도
서로 소통하는 일은 극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도 어느새 강산이 변해가는 요즘
소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각종 블로그나 사이트에서
8개 구단의 팬들과 그 각각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회는 참 많아졌죠.

프로야구가 겉보기에 이렇게 범 국민적으로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WBC, 박찬호, 이승엽,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
이중 어느 것일지도, 또는 전부일지도 모르겠군요.
크게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하기 쉬워진 요즘이
저는 매우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저는 묘한 단어와 접하게 됩니다. 소위 엘빠, 롯빠 등의
팀명 뒤에 '빠'를 붙이는 것이죠. 빠돌이 또는 빠순이가 줄어서 붙은 말일까요
관심있지도 궁금하지도 않지만, 제가 처음 저 단어로 지칭되어 불릴 때의
어딘가 뒷맛이 좋지 않고 어색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냥 팬을 가르키는 신조어인가 보다 하고 넘겼죠.

요즘은 각종 사이트에서 저 단어들을 참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 문제도 있겠지만 열에 아홉은 상대 팀 선수, 또는
상대 팀 팬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헐뜯는 용도로 자주 쓰이더군요.
더욱 놀란 것은 이런 종류의 내용들을 게시판이나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한 뒤
당당하게도 "나는 XX빠니까 괜찮아" 라는 투의 내용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위의 예시는 상당히 극단적인 것이었지만. 당신이 잘 나가는 팀의 팬일 때
상대적으로 하위권에 있는 팀의 팬을 면전에서 조롱하거나 놀릴 수 있을까요?
또는 반대 입장에서 상대 선수가 치사하고 치졸한 플레이만 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글은, 공개되어있는 이상 위와 별반 다른 게 없는
자신의 의사표시이자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XX빠"가 무슨 뜻인지, 근원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적어도 간판으로 내걸고 타팀 선수나 팬을 자유롭게
비난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저 치들이 먼저 시작했으니까, 나도 똑같이 해도 된다" 라는 논리는 아니겠지요.


오늘 양 팀은 좋은 경기를 했습니다.
제구력이 들쭉날쭉한 고효준의 공에 LG 타자들은 말려들었고
정대현은 여전히 참 좋은 투구를 하더군요.
3연패로 잠못드는 밤이 되겠고, 내일 투수가 최원호라는 사실이 내심 불안하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경기가 있고, 야구는 모르는 거니까요.

어느 게시판이라고 다르겠습니까만, 모니터 너머의 상대도 배려하고
서로 웃으면서 공감하고 아쉬워하며 응원할 수 있는 야구팬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by 날굴 | 2009/05/14 01:26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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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j at 2009/05/14 01:42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지요.
저도 94년에 엘지팬들에게 똑같은 경우를 당했답니다.
웃기는 건 그넘은 부모님때부터 인천 토박이였다는 거...

싸울려면 디씨에 가서 싸우는 게 낫죠.
여기서 어쩌고 하는 거 보다...
Commented by 날굴 at 2009/05/14 01:50
그렇죠 ㅎㅎ 전 그저 싸우시는 분들이 안타까울 뿐..
Commented by 곰돌군 at 2009/05/14 07:44
야구를 야구로 즐기지 못하게 되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포츠 관련해서는
가급적 포스팅을 않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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